"가까이서 죽음을 보면 항상 그렇듯이 나는 습관적으로 명치끝이 서늘해졌다. 나는 죽음을 증오한다."
젊은 의사의 수기
'나는 아직 죄를 지은 적은 없어' 나는 끊임없이 고통스럽게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학위가 있어. 그리고 열다섯 번이나 우등 점수를 받았아. 나는 보조 의사라도 좋으니 큰 도시로 가고 싶다고 했었지. 하지만 거절당했어. 그들은 웃으면서 말했지. 적응하라고. 당신은 익숙해질 거라고. 탈장 환자가 와도? 설명해 보세요, 내가 어떻게 탈장 환자에 익숙해진다는 말입니까? 더구나 내 손길이 닿는 곳마다 탈장 환자가 느낄 고통은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아마도 그 환자는 저세상에 익숙해지겠지(여기서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 p.10, '수탉을 수놓은 수건'
여기서 나는 완전히 항복했고 거의 울 뻔했다. 그러고는 창 너머 어둠 속에서 간절히 기도했다. 어떤 환자라도 좋으니 제발 수축된 탈장 환자만은... - p.13, '수탉을 수놓은 수건'
오랫동안 그 수건은 무린스키에 있는 내 침실에 걸려 있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침내 낡아서 닳아 구멍이 났다. 결국 수건은 없어졌다. 마치 내 기억이 희미해져서 결국엔 사라지듯이. - '수탉을 수놓은 수건'
그 책을 읽은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게다가 집중해서 모든 단어를 심사숙고하고, 부분들의 연관성과 모든 방법을 상상하면서 줄까지 쳐 놓았다. 그래서 책을 읽을 때 텍스트 전체가 머릿속에 영원히 남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지금은 읽은 것 중에서 한 구절만 떠오를 뿐이다.
횡위는 절대적으로 좋지 않은 위치이다.
그건 사실이다. 여자 자신과 6개월 전에 의과 대학을 졸업한 의사에게도 절대적으로 좋지 않다. - p.32, '주현절의 태아 회전술'
단편적인 말, 완전하지 않은 구절, 말할 때 잠깐씩 던지는 암시들에서 나는 어떤 책에도 나와 있지 않은 가장 필수적인 것을 알게 되었다. - p.37. '주현절의 태아 회전술'
"그럼 알아서 하세요." 나는 무심히 말하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뭐, 이게 다군! 내겐 이게 더 편하지.' 내 말과 제안을 듣고 조산부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 사람들이 거절했으니 나는 살았어.' 그런데 생각을 끝내기 무섭게 내가 아닌 누군가가 낯선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어쩌자는 겁니까, 당신들 미쳤어요? 어떻게 동의를 안 할 수 있습니까? 아이가 죽어요. 동의하세요. 아이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 p.47, '강철로 된 목'
"음, 그래요. 아시다시피 나는 결코 흥분하는 일이 없어요."
나는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피곤해서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저 옆으로 시선을 돌렸을 뿐이다. 나는 작별 인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함박눈이 내려 세상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내 집은 외롭고 조용하고 엄숙했다. 집에 오면 나는 자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 '강철로 된 목'
사무용 바지의 회색 줄무늬가 불행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 p.56, '눈보라'
한 가지 생각을 했다. 어떻게 환자를 구할 것인가? 이렇게 하면 구할 수 있다. 이 방법으로! 모두를!
전투가 지나갔다. 전투는 매일 아침 설광(雪光)이 희미하게 비칠 때 시작해서 활활 타는 램프가 황갈색으로 깜박거릴 때 끝났다. - p.58, '눈보라'
가까이서 죽음을 보면 항상 그렇듯이 나는 습관적으로 명치끝이 서늘해졌다. 나는 죽음을 증오한다. - p.67, '눈보라'
어렵사리 돌아선 나는 횃불뿐만 아니라 샬로메체보의 모든 건물이 마치 꿈속처럼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나를 불안하고 가슴 아프게 했다.
"하지만 괜찮을 거야." 이건 생각도 중얼거림도 아니었다. 나는 잠시 밖으로 코를 내밀었다가 나쁜 일이 일어날까 두려워 다시 마차 안으로 숨었다. 온 세상이 서로 얽혀 있다가 다시 사방으로 흩어졌다. - p.70, '눈보라'
칠흑 같은 어둠이 장막처럼 길게 누워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메스도, 청진기도 없이 어디론가 간다, 싸운다...촌구석에서. 하지만 혼자가 아니다. 나의 군대가 진군한다. 데미얀 루키치, 안나 니콜라예브나, 펠라게야 이바노브나. 모두 흰 가운을 입고 앞으로 나간다, 전진...
꿈은 행복한 농담이다! - p.94 '칠흑 같은 어둠'
아니다, 심지어 꿈속에서조차 어떤 것도 나를 놀라게 하지 못할 거라고 결코 오만하게 잠꼬대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리고 한 해가 지났다. 또 다음 해가 지날 것이다. 그러면 처음과 마찬가지로 뜻밖의 일들이 날 기다릴 것이다. 즉, 더 깊이 공부해야 한다. - p.116, '사라진 눈(眼)'
모르핀
사람은 자기 방식대로 앓고, 보다시피 엉뚱하게 쓰기 마련이다. - p.162
초췌한 죽음, 서서히 다가오는 죽음...
'우울한 상태' 라는 전문 용어에는 이런 뜻이 숨어 있다. - p.185
절제하는 동안 나는 사각거리는 소리에 놀라고, 사람들이 나를 증오하고 있다고 상상한다. 나는 그들이 무섭다. 다행증(多幸症)을 경험하는 동안 그들 모두를 사랑한다. 하지만 나는 고독을 더 즐긴다. - p.197
아, 제기랄! 왜 매사에 자신의 모든 행동에 대해 그럴싸한 구실을 찾아야만 하는 것일까? 정말 이것은 삶이 아니라 실제로 고통이다! - p.199